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(문단 편집) === 전환기 === 페르마의 정리가 지난 두 세기 동안 항상 부분적으로만 증명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. 페르마의 정리가 원론적으로 증명되기 위해선 말 그대로 현대수학의 '''모든 것'''이 필요했었던 것이다. 앤드루 와일스(1953~ )의 증명법에는 1957년도에 발표된 [[모듈러성 정리]]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.[* 증명되기 전에는 타니야마-시무라의 추론으로 불렸다. 리벳의 발표 이후 추론(conjecture)에서 정리(Theorem)로 격상 됐다.] 이 모듈러성 정리는 수학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분야들의 다리 역할을 함으로써, 당시에는 '만약 타니야마-시무라의 추론이 사실이라면' 이라는 전제 하에 나온 논문들이 많았다. 따라서 모듈러성 정리를 증명하는 것은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는 것 뿐만이 아니고 사상누각과 같았던 새로운 수학 분야의 근간이 되는 것이었다. 게다가 모듈러성의 정리를 증명한다면 대통일 수학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한 첫 번째의 업적이 될 것이 확실했다. 그런데 [[독일]]의 수학자 '''게르하르트 프라이'''(Gerhard Frey)가 모듈러성 정리를 이용하여 페르마의 정리를 타원곡선의 형태로 변형을 시키면서 점차 단초가 보이기 시작했다. 이 식은 페르마의 정리가 [[귀류법|틀렸다는 가정 하에 유도된]] 식이었다. 프라이는 모듈러성 정리가 맞는다면 자신이 유도해낸 타원곡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, 따라서 페르마의 정리를 만족하는 정수인 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선보였다. 즉 프라이는 모듈러성 정리를 증명하면 페르마의 정리 또한 부록으로 증명된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. 다만 프라이의 증명 과정에는 일부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고, 그렇기에 이 증명은 엡실론 추측(Epsilon conjecture)으로 명명되었다. 프라이가 1985년도에 이 사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프로 수학자들은 침체기에 활동했던 자신들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어렵기만 하고 수학적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[[츤데레|관심이 없는 척 했지만]], 프라이가 발표한 엡실론 추측을 통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정복할 가능성이 보였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빛의 속도로 달려와서 논문 내용을 복사해갔다.[* '페르마의 마지막 정리'라는 책에서는 '수학자의 발표의 학문적 중요성은 발표 후 복사실에서 논문 복사를 하려는 학자의 수를 세어보면 된다'고 언급하는데, 이 발표 직후 수학자들이 대거 자리를 박차고 논문을 복사하려고 뛰쳐나갔다고 언급한다.] 만 3세기에 걸친 이 난제를 해결하기만 한다면 학문적 성취는 물론이거니와 막대한 명예까지 거머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. 헌데 '''기다렸다는 듯이 풀리지 않아''' 모두를 좌절시켰다. 그러던 와중 '''케네스 리벳'''(Kenneth A. Ribet)이 만 1년간의 고생 끝에 1986년에 엡실론 추측을 증명하는데 성공하였다. 이 증명이 발표되자, 전 세계 수학계는 드디어 페르마의 대정리를 정복할 수 있다며 흥분했다. 이를 통해 엡실론 추측은 리벳의 정리(Ribet's theorem)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으며, 리벳은 이 추측을 증명한 업적으로 1989년에 페르마 상(Fermat Prize)을 수상했다. 이제 모듈러성 정리, 즉 '타니야마-시무라의 추론'만 증명되면 모든 게 완료되는 모든 밑그림이 마련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